윤회매

기사입력 2015-08-05 15:45:30 | 이젠시민시대

벽(癖)은 치(癡)하고도 통한다. 한자로 둘 다 병들어누울녁(疒)부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조선조 학자 중에 매화에 빠진 매벽(梅癖)을 퇴계 이황이라 한다면 매화에 미친 매치(梅癡)는 이덕무다. 이덕무는 책에 미치기도 해서 자호를 ‘간서치(看書癡)’라 매기기도 했다. ‘다정도 병인 양 하여’는 이럴 때 참으로 만고의 희운(稀韻)이 아닐 수 없다.

 

이매치는 살아있는 매화를 사랑했을 뿐 아니라 매화가 이운 뒤에도 사시사철 상사병 걸린 머슴아 마냥 내내 그리워했다. 그리하여 급기야 ‘윤회매(輪回梅)’를 발명해냈다. 윤회매란 종이와 밀랍으로 만든 조화를 말하는데 꽃에서 난 꿀로 다시 꽃을 빚었으니 윤회가 아니냐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렇게 가화일망정 매양 곁에 매화를 두고 암향을 어루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동짓날부터 매화가 피기까지 81일 동안 달력에 매화를 그려넣던 선인들의 ‘구구소한(九九消寒)’ 풍류는 사뭇 점잖거나 풋되다 해야겠다.

 

지난달 다음(茶愔)의 윤회매 전시에 가 봤다. 다음은 범능스님으로 지내다 산을 내려온 김창덕씨인데 선화 바라춤 범패 등에 두루 능한 무애통이다. 필자와는 20년 전에 인연을 맺어 성근 정을 이어온다. 그는 1996년에 이덕무의 ‘윤회매십전’을 보고 이를 되살려야겠다고 작정한 뒤 직심으로 정진 중이다. 그는 “이덕무선생은 밀랍으로 빚은 윤회매를 찻자리에 차화로 모셔놓고 차인들과 노닐었던 같다”고 했다.

 

기록에 보면 선인들의 치매(癡梅)끼는 상상을 훨 넘어갔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빙등조빈연(氷燈照賓筵)’이라는 게 있었다. 추운 겨울날 항아리의 물을 얼려 얼음등을 만들고 그 안에 촛불을 밝혀 그 빛에 매화(손님)를 비춰보고 감상을 하는 놀음이었다. 뿐 아니라 차실 벽에 감실을 무어놓고 거기에 매화를 모신 뒤 거울이나 조명을 이용해 품평을 하기도 했다.

 

선비들이 두고 쓰는 말 중에 ‘완물상지(玩物喪志)’가 있다. 풍물을 너무 즐기면 마음을 잃는다던가. 그런 선비들이 이 정도였으니 이것이 예의 ‘미쳐야 미치는’ 경개인지.

한송주 <월간 전라도닷컴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