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하차

기사입력 2015-08-31 16:16:50 | 이젠시민시대

오랜만에 전남 무안 회산연못에 다녀왔다. 10만평 방죽에 하얗게 벌은 연꽃은 여전히 장관이었고 환호를 올리는 완상객들의 기꺼워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다만 곁들이 행사가 너무 번거로워 연꽃 감상에 방해가 된 점이 아쉬웠다.

 

오니(汚泥)에 청정(淸淨)한 화중군자(花中君子)를 뵈려면 분위가 좀 차분해야 할 것이다. 지역축제가 상업성에만 눈이 어두워 씨끌벅적한 놀이판 일색인 것은 문제가 있다. 풍류는 고즈넉한 맛이 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 마디 군소리를 하자면, 무안 회산방죽의 연은 엄밀히 말하면 연(蓮)이 아니라 하(荷)다. 연은 물속에 잠겨 있고 하는 물 위에 솟아 있다. 연과 하를 통틀어 부용(芙蓉)이라 하는데 연은 그러니까 잠긴 부용이요, 하는 뜬 부용이다. 흔히 말하는 수련(睡蓮)이 곧 연이다.

 

연근즙이니 연근죽이니 하는 양생식도 하근즙, 하근죽으로 불러야 옳다. 연근은 먹을 수 없다. 그러니 쓸모로 치면 당연히 하가 상승(上乘)이다. 풍미도 엄연히 풍류다. 백련차, 그러니까 백하차나 하근죽을 들먹이니 금세 입맛이 다셔진다. 아아, 송광사 하근죽이 그립다. 산사의 한 겨울 새벽 굴풋한 속을 다사롭고 개미있게 감싸주던 선열당의 하근죽!

 

하지만 뭐니 해도 부용의 진미는 백하차다. 백하차의 풍류가 필자의 졸시에 살짝 담겨 있다. 부끄러움 무릅쓰고 잠깐 인용해 본다.

<한 겨울 백련사에 뭐 하러 가나/ 동백도 없는데/ 如然히 고약스런 스님 구라 들으려고?/ 모르는 소리/ 꽃 보러 간다네/ 빈 산에는 물론 눈보라만 펄펄 휘날릴 뿐이지/ 꽃은 스님 방에 벙글어 있다네/ 여연스님은 냉장고 속에서 꽁꽁 언 꽃봉오리를 꺼내네/ 물이 팔팔 끓는 사발에 봉오리를 넣네/ 팡팡 소리를 내며 하얀 연꽃이 활짝 피네/ 모두들 하얗게 질리네/ 하얗게 질려서 뜨거운 연꽃을 꿀꺽 마시네/ 우리는 화탕세례를 받고 여연스님 홀로 빙그레 웃네/ 한 겨울 동백도 없는 백련사에 왜 가나/ 백련꽃 먹으러 간다네>

 

한송주 <월간 전라도닷컴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