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꿈은 무엇인가?

기사입력 2015-08-31 16:18:33 | 이젠시민시대

인생나눔교실 워크숍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빨리 친하게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포스트잇에 상대방의 ‘좋아하는 술과 주량, 읽는 책, 바라는 꿈’ 등 3가지 사항을 상상해 적는 것이다. 다음 서로 포스트잇을 바꿔 보며 첫인상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풀어간다.

 

부담 없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어 좋았다. 나의 상대는 오래전 한 번 만난 일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주량이나 취향까지 아는 단계는 아니었다.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상대방이 무슨 술을 좋아하는지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참 효과적이었다.

 

‘그런데, 나의 꿈은 무엇이었나?’ 시간이 지나자 그런 의문이 일었다. 나의 꿈을 그가 무어라고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관심이 없어서였을까. 사실 나 스스로도 ‘내가 바라는 꿈’을 써보려 해도 뭔가 선명하게 잡히지 않는다. 들었더라도 잊을만하다. 그가 바라는 꿈은 무얼까? 그 항목에 나는 ‘정치가’라고 쓴 것 같다. 친화력이 좋을 것 같은 인상이어서 그리 썼다. 그러나 실제 그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이야기가 꿈 얘기까지 나가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엔 나도 무지개처럼 선명한 꿈이 있었다. “세상 책을 다 읽어보고, 세상을 다 돌아보고,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나보고 싶다” 정말 무지개를 잡으려는 듯 거창한 꿈이었다. 송나라 대문호 ‘구양수(歐陽脩)의 3대 소원’을 베낀 것이다. 다행히 철이 들면서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세상을 많이 돌아보고 세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직업이다. 또 세상 책도 많이 읽어야 한다.

 

어릴 적 꿈을 이루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드린 보답일까, 열심히 돌아다녔다. 어차피 다 가볼 수는 없으니 사람이 몰리는 높은 곳이라도 올라가려고 애썼다. 파리의 개선문 옥상, 자유의 여신상 머리, 세인트루이스의 게이트웨이 전망대, 워싱턴 타워 등 꼭대기까지 올라가려고 긴 줄에 서서 시간여 줄기차게 기다리기도 했다.

 

높은 데 오르면 많이 보인다. 사람들, 건물들, 나무들, 논밭도…. 그러다 어느 날 회의감이 들었다. 어느 정도 돌아다니고 어느 정도 올라 가보아야 내 꿈이 이뤄지는 걸까. 그래서 얻는 게 무얼까? 많은 데를 가보고 많은 곳을 올라가보았지만 남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해외여행 가이드가 ‘남는 건 사진뿐’이라더니 사진만 남았나? 무지개는 볼 수는 있었지만 잡을 수는 없었다.

 

무지개꿈처럼 큰 꿈이 희미해지면서 다음부터는 기억도 나지 않는 단발성 작은 꿈들만 난무했다. 로또 복권을 사면서 백만장자가 되고 싶었던 꿈, 골프를 배우면서 홀인원을 하고 싶었던 꿈, 칼럼을 쓰면서 만 여 명이 클릭해 읽어주었으면 바라던 꿈, 서당에 다니면서 한문박사가 되고 싶다는 꿈 등등, 게 중에는 팍팍한 현실에서 잠간 도망치려는 백일몽 같은 꿈도 있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이런 작고 짧은 꿈들도 없어서는 안 될 꿈들이었다. 스포츠게임을 보는 데 즐거움을 돋우는 ‘관전 포인트’ 같은 것들이었다. 한일전축구에서 한국이 일본을 얼마나 시원하게 이겨줄 것인가? 이번 야구게임에 기아타이거즈가 연승할 수 있을 것인가? 관전 포인트는 게임에 의미를 부여한다. 관전 포인트 없는 게임은 무의미해져 재미가 반감한다.

 

꿈은 세상살이의 관전 포인트이다.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꿈이 삶에 의미를 주면 그런 삶은 심심할 수 없다. 활기차고 즐거워진다. 그러나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은 박진감이 넘치는 스포츠 게임이 아니다. 그냥 밥 먹고 잠자고 깨고 걷는 평범한 일상에 의미를 주는 관전 포인트가 있을 수 있나? 날마다 밥을 먹으며 날마다 잠을 자며 날마다 걸으며 무슨 꿈을 꾸어야 하나.

 

순간순간 끊어지지 않고 지속할 질기고 긴 꿈이 필요하다. 무지개꿈은 아니다. 확실하게 손에 잡히는 꿈이어야 한다. 덕분에 바로바로 사라지는 짧은 꿈이 아닌 긴 꿈을 하나 잡았다. 가다가 안 이뤄져도 되는 꿈, 반 토막만 얻어도 보람이 있는 꿈, 꿈꾸며 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꿈이다. 자서전을 쓰자!

김종남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