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대학 다니는 ‘재미’

기사입력 2015-10-02 11:12:53 | 이젠시민시대

수요일 오후, ‘박물관대학’에 다닌다. 수강자들의 열기가 엄청나다. 인문학 열풍이라더니 정말 실감이 난다. 알고 보니 전남대박물관과 국립광주박물관이 똑같은 시간에 박물관 강좌를 열고 있다. 양쪽 합치면 수강자가 500명이 넘을 터인데 두 곳 다 만원사례이다. 두어 달 전 미리 돈을 내고 등록해야 한다. 처음엔 늦는 바람에 웨이팅리스트신세를 거쳐 간신히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평일 오후시간이니 직장을 가진 사람은 다니기 힘들 것이다. 수강자는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다. 또 남성보다 여성분들이 훨씬 많아 보인다. 무료강좌도 아닌데 만학도(?)들이 이리 많을까. ‘그 나라의 미래를 보려면 학교교실에 가서 젊은이들의 눈동자를 보라’는 말이 있다. 박물관대학에 가서 나이든 수강자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만나보라! 환하게 빛나는 ‘노령화 대한민국’의 미래를 볼 수 있다.

 

광주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하는 금요조찬포럼도 가끔 보게 된다. TV를 틀 때마다 첫 화면으로 뜨는 KCTV에서 반복 방영해주는 덕분이다. 쟁쟁한 강사들의 강연도 좋지만 카메라에 잡히는 청중석도 인상 깊다. 한결같이 정장차림에 진지한 자세들이다. 다들 지역에서 잘 알려진 기업인이거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다. 열심히 메모도 하고 어떤 때는 강사의 선창에 따라 문구도 외치고 손뼉도 친다. ‘경제 광주’의 미래도 환할 것 같아 가슴 뿌듯해진다.

 

어쩌다 의문이 든다. 이렇게 화창한 날, 왜 많은 사람들이 너른 축제장이 아니고 좁은 강당의자로 모여드는가. 당장 돈 생기는 일도 아닌데, 배우는 일이 어째서 재미있을까? 슬며시 바람(願)도 생긴다. 열심히 들은 강의를 어디엔가 써먹을 수 있겠지! 마치 그냥 재미삼아 과일나무를 키우는데 불쑥 ‘언제쯤 이 열매를 따 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솟는 것처럼.

 

안면이 있는 수강자 몇 명이 차를 마실 때 그 얘기가 나왔다. “왜들 빠지지 않고 이렇게 열심이지요? 학교 다닐 때 이 정도 열심이었으면 훨씬 출세했을 터인데 말이야!” “부담이 없는 자유스러움 때문일 거야! 말하자면 시험이 없어서….” 맞는 말 같다. 젊을 때처럼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점수를 올려야할 부담도 없다. 젊을 때 강의듣기는 생존경쟁을 위한 시험공부였다. 지금은 좋아하는 강의를 그냥 듣고 재미를 느낀다.

그런데 정말 재미만 느끼면 그만일까. 지적 호기심만 만족시키며 그저 즐기면 다 되는 걸까. 박물관대학 다닌 시간도 벌써 4학기 째이다. 훌륭한 프로그램, 저명한 강사들, 거기에다 엘리트 수강자들까지 갖출 건 다 갖추었다. 왔다 갔다 하면서 가끔 허전한 느낌도 든다. 무언가 하긴 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있는 듯한 허전함이다. 시험 날을 앞두고 놀고 있는 아이의 심정이랄까.

 

<강의>의 저자 신영복 교수는 최근 저서 <담론>에서 “강의는 마중물이다. 차가운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마중물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강사에게 주는 말씀만은 아니다. ‘마중물’만 마시며 ‘지하수’를 끌어올리지 못하는 수강자에게 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마중물을 밑천삼아 우리가 생산해야할 ‘차가운 지하수’는 무엇일까? 마중물을 몇 년간 마셨으니 무언가 생산해내는 것이 있긴 해야겠구나!

 

곰곰 생각해보아도 난 마중물만 마시는 수강자이다. 생산해내는 것을 내놓을 게 없다. 그나마 ‘배우는 재미’가 줄어들지 않으니 다행이다. 지적호기심이 불붙인 갈증을 푸는 한 순간의 즐거움, 배우는 재미이다. 아쉽게도 내 재미의 샘물은 남의 갈증을 풀어줄 정도로 많이 쏟아져 나오는 지하수는 아니다. 이 역시 기대할만한 수강자들이 많아 다행이다.

 

함석헌 선생의 말씀을 새겨본다. “역사는 마치 소화된 음식같이, 효과를 나타내는 신체운동같이, 산 생명으로 존재 안에 남아 있다.” ‘역사’란 단어를 ‘강의’로 바꿔보며 자위한다. “강의는 소화된 음식처럼 산 생명이 된다.” 강의가 하루하루 쌓여 역사가 될 때 우리 모두는 ‘산 생명’처럼 펑펑 지하수를 쏟아낼 터이다.

김종남 <언론인>